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몰타 항공전 (문단 편집) == 3차 공방전: 1941년 11월 ~ 1942년 5월 == ||[youtube(Xf3vzsT40aI)]|| ||[youtube(qjUmRzKZH-E)]|| || 1942년, 몰타로 향하는 영국 보급선단을 공습하는 [[독일 공군(나치 독일)|독일 공군]] || [[소련]]을 집어삼킬 것과 같은 기세로 밀고 들어가던 독일은 [[소련군]]의 반격에 좌절되고, 무시무시한 [[동장군]]이 찾아오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에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잉여]]화된 전력을 썩히지 말고 이참에 지중해 및 북아프리카 지역을 싹 정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지금까지 겪었던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만악의 근원]](…)으로 몰타 섬이 지목됐다. 이에 따라 1942년 봄이 지나가기 전, 그러니깐 동부전선의 대치상태가 풀리고 다시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몰타 섬을 점령한다는 헤르쿨레즈 작전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독일 공군의 정예부대인 제 2 항공군단 전력을 몰타 섬 방면으로 급파하고, 여기에 이탈리아 공군까지 가세하여 대략 600여기에 달하는 대전력을 형성했다. 이 무렵 몰타 섬은 160여기의 허리케인을 운용하고 있었으나 [[Bf 109]]까지 동원된 정예부대가 투입된다면 명백하게 역세일 수 밖에 없었다. 실제 1941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계속된 독일 공군의 공격으로 2월에는 고작 27기의 [[호커 허리케인|허리케인]]만이 남았을 정도로 탈탈 털렸다. 결국 영국본토에서도 이에 대항하여 영국이 자랑하는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오로지 본토 작전에서만 투입됐던 스핏파이어의 첫 나들이였다. 3월 7일, 영국은 항공모함을 동원하여 스핏파이어 15기를 몰타 섬에 배치했지만, 이는 오히려 독일군의 [[어그로]]만 잔뜩 끌어놓은 격이 되고 말았다. 독일군은 가용 폭격기를 동원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고, 수송선단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강격을 가하여 몰타 섬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만들었다. 4월까지 지속된 이 공격에서 몰타 섬은 영국 본토보다 더 많은 폭탄을 얻어맞아 그야말로 폐허로 돌변하고 말았다. 이에 대항하여 영국은 다시 한 번 [[진주만 공습]]으로 참전한 [[미국]]의 항공모함까지 빌려 총 45기의 스핏파이어를 몰타에 증원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증원은 독일군도 한 차례 경험했고, 이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던 독일군이 급습하여 증원한 스핏파이어가 모두 몰살당하는 최악의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 연일 계속된 폭격으로 대공포 대부분이 파손됐고, 보급선단이 몰타를 건너뛰고 있었기에 물자마저 부족한 상황까지 겹쳐 영국군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말았다. 영국 본토에서는 몰타에서의 패배와 그에 대한 상실 가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중해]]의 [[불침항모]]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몰타 섬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고, 몰타 섬 지하 [[동굴]]에는 영국군의 비밀 잠수함 기지가 있었는데다가,[* 여기서 출격한 잠수함들이 롬멜에게 가는 지원선단을 요격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몰타를 잃을 경우 롬멜의 진격을 멈추기 힘들어진다.] 몰타까지 잃으면 [[수에즈 운하]]는 사실상 장식이 되어버리는 상황이었다. 이미 그런 이유로 [[말레이 해전]]을 겪었던 전시수상 [[윈스턴 처칠]]도 '''"닥치고 사수!"'''를 외치고 있었기에, 영국군은 다시 한 번 64기의 스핏파이어를 증원할 계획을 세웠다. 게다가 이미 한 차례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도 있었기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모든 스핏파이어는 언제라도 독일 공군의 공격에 대항할 수 있도록 무장한 상태로 항공모함에서 이함하기로 했으며, 저공 비행을 통해 독일이 설치한 [[레이더]]의 탐지를 피하도록 했다. 이 계획은 5월 9일에 시행됐으며 [[독일 공군(나치 독일)|독일 공군]]도 뒤늦게 스핏파이어가 투입됐음을 알아채고 공격에 나섰지만, 예전과는 달리 전투준비를 치른 스핏파이어가 상공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증원저지에 실패했으며 밤에는 몰타 외곽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송선단이 야음을 틈타 입항하여 물자와 항공유를 내려놓았다. 허를 찔린 독일 공군은 즉시 공습에 나서 보급을 저지하려 했으나 스핏파이어의 요격에 걸려 영국군의 완승으로 끝나고 말았다. 다 이겼다고 생각했다가 허를 찔린 독일 공군은 크게 실망했고 동시에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5월이 지나면 다시 동부전선으로 돌아가 소련과의 교전을 준비해야 됐으므로 그 전까지 몰타를 함락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했던 것. 하지만 영국이 단단히 준비를 한 이상 그들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덕분에 몰타는 또다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1942년 8월 3일, 영국은 [[https://en.wikipedia.org/wiki/Operation_Pedestal|페데탈 작전]]을 감행했다.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퓨리어스(항공모함)|퓨리어스]]를 포함한 50척의 배가 돌격했고, 독일군은 필사적으로 영국 배들을 공격했으나 영국은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몰타에 대량의 물자와 연료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독일은 더 이상 연합군을 막을 수 없었고, 독일의 아프리카 군단은 무너져 내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